이순신 장군의 어록과 업적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무신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준을 통솔했던 영웅입니다.
1545년 한성부 건천동에 태어나 31세 때인 157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습니다.
그는 수많은 업적을 이루며 유명한 명언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살아있는 영웅으로 기억됩니다.
영웅을 넘어 성웅으로까지 불리는 그의 명언, 어록과 업적을 함께 살펴봅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언
"망령되게 움직이지 말고 조용하고 무겁기를 산과 같이 하라"
勿令妄動 靜重如山 (물령망동 정중여산)
첫 해전인 옥포해전에서 신중하고 침착하게 전투에 임할 것을 당부한 말입니다.
옥포해전은 임진왜란 시 조선 수군이 첫 승리를 한 전투이며 조선군의 첫 승리를 한 전투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사옵니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금신전선 상유십이)
원균 휘하의 조선수군이 칠팔척 해전에서 거의 전멸한 후, 선조가 “수군을 파하고 육전에 힘쓸 것”이라는 교서를 내림.
그러나 이순신은 수군을 지휘, 지키겠다 주장하며 남긴 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필사즉생 필생즉사)
절대적인 수적 열세 속에서 크게 해전을 치러야하는 상황에서 굳은 정신력으로 싸울 것을 당부한 말입니다.
다음 날 명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은 위와 같은 결사의 정신으로 전투에 임하여, 13대 133이라는 엄청난 전투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합니다.
"대장으로서 화친할 수 없을뿐더러 이 원수를 놓아 보낼 수는 없습니다."
大將不可不和 讐賊不可從遣 (대장불가불화 수적불가종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어 철군하려는 고니시 부대를 명나라 진 도독이 뇌물로 놓아주려 했지만, 이순신 장군이 단호하게 거절한 말입니다.
"왜적은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교활하고 흉악하여, 그 악랄함을 감추질 않습니다"
日本之人, 變詐萬端, 自古未聞守信之義也 兇狡之徒, 尙不斂惡
(명나라 담종인에게 보내는 '답담도사금토패문' 답장 중)
강화 협상에서 '함부로 왜군과 교전하지 말고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내용의 금토패문에 대해 반박한 말입니다.
"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今日固决死 願天必殲此賊 (금일고결사 원천필섬차적)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을 앞두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서 한 맹세입니다.
전장에 나서는 이순신 장군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어록.
그러나 이 맹세대로 이순신 장군은 적을 섬멸하고 맹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戰方急 愼勿言我死 (전방급 신물언아사)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으로 아군의 동요를 염려하여 남긴 유명한 명언입니다.
1598년 11월 19일 퇴각하는 적과 노량 앞바다에서 대전을 치르는 선상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합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아군의 동요를 염려하며 곁에 있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우리 병사들은 적은 수일지라도 정신력은 백 배입니다"
我兵雖少 精神百倍 (아병수소 정신백배)
명량해전에서 엄청난 수적 열세 속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주기 위해 한 말입니다. 이로부터 그의 리더십과 사명감, 그리고 병사들에 대한 신념과 자부심이 들어납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
1.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은 23전 23승을 하였습니다.
이 승리로 7년 간의 전란을 종식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명장입니다.
2. 전선을 증강시키고, 개량형 신무기 거북선 개발과 정철, 지자, 현자총통 등 신형 전선과 무기를 개발하여 왜란 전부터 조선 수군의 전력을 확충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3. 각종 해전술을 창안하고 명령계통을 일원화하여 조선 수군의 강력한 전투력을 배양했으며, 한산도에 과거장을 설치하여 군 인사 관리를 혁신하였습니다.
4. 군 운영의 발전을 추구하여, 전쟁 기간 동안 왜선 700여 척을 나포, 격침시켜 세계 해전 사상 길이 남은 업적들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에서 적선 30여 척을 격파하였으며 사천에서 거북선으로 처음 사용해 적선 13척을 격파하였습니다. 당포에서는 적 선편 20척, 당항 포에서는 100여 척이라는 대규모 적 선편들도 모두 격파하였습니다.
특별한 것은 한산도대첩입니다. 이 때에는 그가 집적 만든 거북성으로 일본 선편 약 70척 중 절반 가량인 약 31~33척정도를 침몰 시켯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그의 승리는 계속되었습니다. 안골 포 해전에서 승리한 후 부산까지 진출해 왜국 선편 약 백여 척 중 절반 가량인 약 50~60척정도를 침못 시켯다고 합니다.
그 후 명나라 수군과 함께 원정해 온 이 후에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왜군의 작전에 큰 타격을 가하였습니다. 정유재란 발발 후,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되어, 명량으로 출전, 12척의 함선으로 133척의 적군과 대결하여 31척을 격침시키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듬해 철수에 돌입한 적선 500여 척이 노량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의 수군과 공동으로 적군을 기습, 승리로 이끌었으나 이순신 장군은 이 해전에서 전사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그의 생애 동안 국가를 위해 헌신하였고 그 헌신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가치있는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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